Wednesday, August 5, 2009

이 시들을 쓰기까지

1.
나는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있었다.
대략 1978년 말부터였다.
나의 약 6년간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이
절정에 달하던 때였다.
나는 그것을 일기장 여기저기에 기록하다가
더 이상 생각이 흐려지기 전에 정리해서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급박감을 느꼈다.
20권 정도의 일기장을 참고로
최선을 다해 기억을 되살리며
20여년 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지금도 여전히 강하게 나를 잡고있는 것들을
1996년 5월 5일부터 기록하기 시작했다.

2.
어떤 것을 찬성하기 위해
어떤 것을 반대하기 위해
이 글을 쓰지 않았다.
마음에 나타나는 그대로 써내려 갔다.
이것이 전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될지
나는 알 수 없다.
완벽한 작품을 만들겠다거나
체계적인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순간 순간 내게 주어지는 단편적인 글들을
떠오르는 그대로 옮겨 놓으려 했다.
어떤 계획도 없이
그때 그때 그대로 적었다.

나의 의도는 없었다.
나의 창조는 없었다.
나의 노력은 없었다.
나는 없었다.

주어진 것만 썼다.
이미 내 속에 있던 것만 썼다.
내가 창작한 것은 하나도 없다.
어떤 모순이 있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아무리 단편적인 글이라도 상관하지 않았다.
나의 논리와 지식이 들어가지 않도록 힘썼다.

나는 나를 모른다.
나의 본래의 모습을 모른다.
태초의 나의 모습을 모른다.
단지 내가 느끼는 것은
그 미지의 내게로 가기위해
잠시도 쉬지 않고
내가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
오직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
쉴새없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3.
이 글은 내게 새 우주였다.
보이는 우주보다 넓었다.
모든 것이 나를 흥분시켰다.
나는 그 속을 아무렇게나 날아다녔다.
신기한 동화나라를 훨훨 헤엄쳐 다녔다.
어린이 보다 재미있게 뒹굴었다.
높은 데서 떨어져도 아프지 않았다.

4.
어디에 가도 메모지와 필기구를 가지고 다녔다.
생각이 떠오를 때 즉시 적어두지 않으면
좀처럼 다시 기억해낼 수 없었다.
에스컬레이트 위에서 메모했고
면도를 하다가 메모했고
잠을 자다가 일어나 메모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 메모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나는 알 수 없다.

5.
이 글은 나의 휴식이다.
이 글은 나의 감격이다.
하나의 초점을 향한 질주이다.

이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변화한다.
환희의 세계로 다가 간다.
이 글은 나에게 언제나
충격이며 전율이다.
감동이며 신비이다.

1997. 6. 5. 어석 최병길


*1997년에 127편의 시를 담은 시집을 자비로 출간하여 무료로 배포한 적이 있다.
팔리기는 커녕 무료로 줘도 안 가져갔다.
하지만 이 시들은 1997년에 완성된 이후 변함이 없으며 시간이 갈수록
더욱 내 속에서 빛을 발하고 나를 흥분시키고 있다.

2009. 8. 5. 어석 최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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